Korean Oral - Chohon - Kim So W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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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초혼-김소월

우리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김소월의 본명은 김정식이다. 소월이라는 이름 때문에 여자로 오해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는 1902년 8월 6일에 태어났으며 오산 중학교를 나와 배재고보를 졸업한뒤 동경대학교 상대에 입하였으나 결국 그만 다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안서 김억이라는 당시 오산학교 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글을 쓰기 시작하였고 1920년 <낭인의 봄>, <야의 우적>, <오과의 읍>,<그리워>를 창조지에 서술하면서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려지게 되었다. 그가 차후에 발표한 <먼 후일>, <죽으면>, <흐트러진 모래 등으로> 라는 글들은 <학생계> 첫 호에 실리게 되었으며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22년에는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닭은 꼬꾸여>, <바람의 봄>, <봄밤>과 같은 글들을 <개벽>지에 발표하였다. 이후로는 1922년 7월 호 <진달래꽃>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시는 떠나는 님을 진달래 꽃으로 축복하는 한국 서정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와 같은 작품들을 발표하였고 1924년에는 사람과 자연을 동등한 기준을 두고 바라보는 동양적 사상이 깃들인 시 <산유화>, <밭고랑>, <생과사> 등은 <영대>지를 통하여 소개되었다. 그리고, 1925년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인 <진달래꽃>이 출간하였다. 어느 정도 명성을 얻는 김소월은 구성군 남시에 위치한 동아일보사에서 지국을 경영하였다. 하지만, 이는 실패로 돌아가고 그는 하루하루를 술에 의존하며 살아갔다. 그리고, 1934년 12월 24일 독약을 마시고 자살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비록 그의 문단생활을 짧았지만 그는 많은 시와 시론을 남겼다.

김소월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그의 창작성은 많은 사람들에게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그는 7.5조의 정형률을 사용하여 한국의 전통적인 한을 노래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의 전통적인 서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였다고 평가를 바고 있다. 그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열성 독자들을 보유하고 있다. <초혼>은 자유시이자 서정시이며 전통적, 민요적, 경정적, 애상적, 감성적 성결을 띄고 있으며 김소월을 보편적인 시와는 달리 남성적 어조와 감정 표현 등이 직설적으로 표출되어 있다. 초혼은 한 민족의 한과 죽음을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시인 김소월을 초혼을 통하여 일별의 고통에 빠진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서 다시 살려내려는 고복의식을 보여주었다. 님과 이별 속에서 너무나 안타까운 슬픔과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단절감이 뚜렷하게 표출되어있다. 시는 매우 직설적으로 화자의 상태를 묘사한다.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보여준 김소월은 매우 인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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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연을 통해 화자가 사랑하는 임과 이별했음을 통고 받는데 그 이유는 바로 사랑하는 임의 죽음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이름’은 사랑하는 임의 존재를 표현하는 것이다. 허공에서 헤어졌기 때문에 그 이름으로 불렸던 존재가 더 이상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자는 그가 사랑하는 임의 죽음 때문에 슬픔과 심한 단절감을 느낀다. 이 슬픔의 강도는 그가 견디어 낼 수 있는 정도가 아니기에 그가 죽을 정도라고 고백한다. ‘부서진 이름’, ‘허공에 사라진 이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와 같은 형식으로 감정이 갈수록 증폭되는 점층법을 상용하였다고 부른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묘사함에 따라 그의 슬픔과 단절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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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연에서는 ‘사랑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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