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의 절정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 시는 혹독하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너질 수 없는 강력한 희망을 갖는 것이라는 내용의 시이다.
화자는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에서 ‘매운 계절(季節)’은 ‘겨울’의 은유고 ‘채찍’은 혹독한 추위를 말한다. ‘북방(北方)’은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으로 볼 때에 조선을 벗어난 곳으로 보인다. ‘휩쓸려오다’의 ‘휩쓸리다’는 ‘무엇에 영향을 입다’로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에 온 것이 자신의 의지로 온 것이 아니고 ‘갈겨’가 ‘힘차게 때리거나 치다’의 의미이므로 겨울의 혹독한 추위에 맞아 쫓겨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온 것이다. ‘마침내’는 ‘드디어 마지막에는’으로 마지막으로 온 곳이 ‘고원(高原)’이다. ‘고원(高原)’에서도 꼭대기에 몰린 것이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은 아주 높음 의미한다. ‘고원(高原)’의 꼭대기를 한다. 그곳은 ‘서릿발 칼날’처럼 좁고 예리한 곳으로 ‘그 위에 서’ 있을 수는 있으나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는 좁은 곳이다. 더 이상 올라갈 곳도 ‘무릎을 꿇’고 앉을 곳도 옆으로 갈 수도 없는 위험한 곳이다. 더 이상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을 피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 몰린 것이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없다. 몸으로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죽음이나 굴복을 택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눈 감아 생각’하는 것밖에 없다. ‘ㄹ밖에’는 ‘-ㄹ 수밖에 다른 수가 없다’의 뜻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이다. 화자는 몸도 움직일 수 없고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감고 뜨는 것밖에 없는 극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화자가 생각하는 것은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로 은유되어 표현 되었다. 이 은유는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하고 있고 아직도 논의 중이다. 문장 그대로 보면 ‘강철로 된 무지개’가 ‘겨울’이다. 이 비유란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직접 설명하지 아니하고 다른 비슷한 현상이나 사물에 빗대어서 설명하는 일’로 비유를 하는 것은 화자가 말하려는 뜻을 전달하는 데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뜻을 모호하게 하기 위하여 비유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겨울’의 뜻을 ‘강철로 된 무지개’가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겨울’이 화자에게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게 한 것이니까. 화자에게는 부정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강철로 된 무지개’도 부정적인 의미이어야 한다. 그런데 ‘무지개’를 부정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무지개’는 ‘공중에 떠 있는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나타내는 반원 모양의 일곱 빛깔의 줄’이다. 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면 ‘화려하면서도 잡을 수 없는 것’ 정도이다.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을 가지고 있는 ‘겨울’을 ‘화려하다’는 이미지와 연결하기 어렵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를 부정적으로 보면 시 전체가 부정적인 내용이 된다. 화자를 둘러싼 상황이 극한적 부정 상황이고 화자가 생각하는 것도 부정적이라면 화자가 외부상황에 굴복하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시가 시로써 존재할 가치가 적어진다. 이런 점에서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를 부정적으로 해석할 수가 없다. 그리고 시인의 다른 시에서는 외부상황에 굴복하는 경우가 없다. 이러한 시인의 경향과 시의 흐름을 보면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가 긍정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구절의 내용이 무엇인지 밝혀야한다. 지금까지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다. 이러한 해석에 또 하나의 해석을 덧붙인다는 것은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으나 접근방법을 달리하여 논의를 하고 그 논의의 논리가 타당성을 획득한다면 기존의 해석과 일치할 경우는 그 해석을 지지하는 것이 될 것이며 새로운 것이라면 그 나름대로 의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의 구조는 4연으로 구성되었으면 각 연이 2행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각 연의 끝이 ‘다’로 끝나 운율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한시에서 율시를 연상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시는 정형성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가 정형적이라는 점을 생각하고 각 연의 글자 수를 보면 다음과 같다.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 (10자)/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 (12자)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11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11자)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11자)/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11자)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12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12자)
각 연의 행을 이루는 글자 수가 10-12, 11-11, 11-11, 11-11, 12-12자 이다. 1연만 제외하고 글자 수가 같다. 1연의 차이는 한국어와 한자어(중국어)가 가지고 있는 차이에서 기인하다고 보면 전체적으로도 1연과 4연, 2연과 3연이 같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이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란 절묘하면서도 어려운 비유를 형성시킨 것으로 보인다. 본래 이 행은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긴 문장구조를 이루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본래 문장은 긍정적인 화자의 정신이 서술되어 있었는데 시의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글자의 수를 줄이면서 문장이 겉으로는 부정적인 의미가 띠는 현상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내용이 줄어들었을까 생각해보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가 긍정적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위에서 밝혔다. 그렇다면 시의 흐름상 어떤 내용이 있어야 할까? 지금 이 시에서 화자는 ‘겨울’ 때문에 ‘눈 감아 생각해 볼’ 정도밖에 행동할 수가 없다. 행동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육체적으로는 불가능하고 정신적인 방법뿐이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인 고통을 이겨내려면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큰 정신적인 희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외부에서 오는 고통이 크면 클수록 정신적인 희망은 더 커야 이겨낼 수 있다. 그렇다면 ‘강철로 된 무지개’는 극한 외부적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이며 화자가 지닌 ‘희망’을 비유한 것이다. 그냥 무지개가 아니라 ‘강철로 된 무지개’인 것이다. ‘강철로 된’에서 ‘강철’은 ‘아주 단단하고 굳센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그대로 인 것이다. ‘아주 단단하고 굳세’서 도저히 꺾을 수 없는 ‘무지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겨울도 꺾을 수 없는 희망을 생각 하는 것만이 지금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절망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이러매 눈 감아’ ‘강철로 된 무지개’를 ‘생각해 볼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강철로 된 무지개’의 의미와 이 시가 글자 수를 맞추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의 본래 구절은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로만이 이겨낼 수 있는가 보다’ 정도일 것이고 ‘로만이 이겨낼 수 있’은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하여 생략되고 ‘무지개’와 ‘는가’를 축약하여 ‘무지갠가’로 쓴 것이다.
이 시를 시대적인 상황에 기대어 해석하면 ‘겨울’은 일제를 말하며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은 일제의 혹독한 한민족 탄압을 말한다. ‘북방’은 우리나라 밖인 중국 등 다른 나라를 말한다. 그러므로 이 시는 일제의 혹독한 한민족 탄압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조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왔으나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있으나 일제가 도저히 없앨 수 없는 조국광복을 생가하면서 이겨내려 한다는 내용이다.
이 시는 한시의 율시 형식을 생각하고 쓴 시로 겨울의 매운 채찍에 갈겨 북방의 고원에 와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몰려서 눈을 감고 강철로 된 무지개인 희망을 생각하면서 외부적 상황의 어려움을 이겨내려고 하는 시이다.